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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사

강남 성형외과서 턱 잘린 여자... "유령의사에 당했다"

강남 성형외과서 턱 잘린 여자… “유령의사에 당했다”

소비자·환자단체 "반인륜범죄이자 신종사기"... 병원측 "유령수술 없다"

환자리포트 이정은 기자



▲  수술도구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은 김아무개씨는 병원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단 한 번도 의사를 보지 못했다. 수술 부위에 대한 상담은 의료면허자격이 없는 상담실장이 했다. '최고 권위자'라고 소개받은 의사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망설이는 김씨에게 상담실장은 "지금 결정하시면 수술비를 절반으로 깎아주겠다"고 했다.


결국 김씨는 '최고 권위자'에게 수술을 받기로 하고 동의서에 서명했다. 김씨가 수술대에 눕자 간호사로 보이는 여자가 다가와 마취를 하려 했다. 김씨는 "의사 선생님을 아직 보지도 못했는데 수술을 받나요"라고 물었다. 여자는 "곧 오실 예정"이라고 답했고, 그 뒷일을 김씨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게 김씨의 턱은 '유령'에게 잘려 나갔다.


수술실에서 환자를 전신마취한 뒤 환자의 동의 없이 집도의사를 바꿔치기하는 이른바 '유령수술'이 판치고 있다.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를 만든 소비자시민모임(아래 소시모)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아래 환연)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령수술'을 규탄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김씨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다. 이밖에도 강남 일대 대형 미용 성형외과 다섯 곳에서 피해를 당한 9명은 "집도의사가 아닌 유령의사에게 수술을 받아 큰 부작용을 앓고 있다"고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에 제보했다. 


성형외과 유령수술 논란은 피해자들의 잇단 부작용 사례와 이 수술에 가담한 한 사람의 양심고백으로 세상에 드러났다. 박아무개씨는 진술서를 통해 "2013년 8월경 제가 진찰해서 수술하기로 했던 모든 턱광대뼈축소수술 환자는 모두 의사 '○○○'과 '□□□'가 수술하도록 병원장이 지시"했다고 밝혔다.


강남 성형외과서 수술 받은 뒤 오른쪽 턱 감각 잃은 김씨




  ▲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를 만든 소비자시민모임과 한국환자단체연합회의 두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6층에서 '반인륜범죄·신종사기 유령수술 규탄 근절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김씨는 수술을 받고 난 뒤 오른쪽 턱의 감각을 잃었다. 같은 병원에서 유령수술을 당한 또 다른 피해자 이아무개씨의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수술을 받은 후 턱이 비틀어지고 광대에 통증을 느끼는 데다가 입이 잘 벌어지지 않아 개구장애 진단까지 받았다. 


해당 성형외과 측은 일 년이 지나면 괜찮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씨의 상태는 악화됐다. 참다못해 병원을 다시 방문한 이씨에게 의사는 "핀을 빼든지 진통제를 먹으라"고만 했다. 당황한 이씨가 "이렇게 무책임해도 되는 것이냐"고 묻자 의사는 "이런 식으로 나오면 진료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유령수술이 가능한 이유는 병원 내부의 은밀한 결탁 때문이다. 일부 대형 미용 성형외과는 유령수술에 가담하는 정도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하고, 이 돈을 받은 사람들은 공범이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수술실 내부에 CCTV 등을 설치할 의무가 없다 보니 외부와 철저히 차단돼 있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병원만 알고 있다. 수술대에 누운 환자는 전신마취를 받으면 의식을 잃고 기억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의료 지식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환자들은 병원과 의사의 말을 감히 의심할 수 없고 무조건 믿을 수밖에 없는 점도 악용됐다.


김자혜 소시모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장에서 "유령수술은 가장 근본적인 환자의 알 권리 및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아무리 의사면허가 있는 사람이 대리수술을 했다고 해도, 환자가 모르는 사람, 선택하지 않은 의료행위를 하는 것은 살인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에 관하여 김선웅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의사가 환자의 몸에 칼을 대더라도 상해로 처벌받지 않는 이유는 의사 면허가 있어서가 아니라 '환자의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다시 말해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가 없는 수술은 정당행위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안기종 환연 대표는 "양심고백을 통해 2013년 8월부터 11월까지 G성형외과에서 이뤄진 안면윤곽술 상당수는 유령수술로 밝혀졌다"며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를 통해 다른 성형외과에서 피해 입은 사람들의 사례도 접수하여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G성형외과에 유령수술 의혹에 대해 문의한 결과, 병원은 "그런(유령수술) 일은 없다"고 답했다. G 성형외과는 지난 11일 해당 병원이 유령수술을 했다고 문제를 제기한 대한성형외과의사회를 상대로 형사소송에 나섰다. 


"집도의사 바꿔치기, 전신마취 악용한 반인륜범죄"




▲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 홈페이지 사진

ⓒ 한국환자단체연합회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수술실에 CCTV를 반드시 설치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의료법 개정안이 하루 빨리 통과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는 "유령수술 등 불법 의료행위는 물론 의료사고가 발생하기 쉬운 경우, 환자와 의료인의 동의를 구해 CCTV로 수술 장면을 녹화함으로써 의료 분쟁을 빠르고 명확하게 밝히자"는 취지로 최동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유령수술을 감시하려면 수술 전 수술동의서에 '수술의사의 전문의 여부 및 전문의 종류'와 '수술에 참여한 의사(집도의사와 보조의사)의 이름'을 표시하고 '수술예정의사와 실제수술의사가 동일하다는 내용의 확인란'을 만들어야 한다고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는 요구했다. 이 확인란에 환자와 의사가 각각 서명한 후 환자에게 반드시 사본을 교부하도록 하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정부가 유령수술을 관리하고 감독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뉴저지 대법원의 1983년 판례를 보면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은 사람이 환자의 신체를 칼로 절개하여 손을 집어넣는 행위는 '의료'가 아니라 '사기, 상해, 살인미수'에 해당한다"고 나와 있다.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는 최근 강남 일대에서 비밀리에 벌어지고 있는 '유령의사 성형수술'에 대해 "환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고 집도의사를 바꿔치는 행위는 전신마취를 악용한 '반인륜범죄'이고 의료 면허제의 근간을 흔드는 '신종사기'이자 의료행위를 가장한 '살인·상해행위와 다름없다"며 강력히 규탄했다. 


피해자 김씨는 "병원에 다니면서 외국인도 많이 봤는데 그 분들도 부작용이 생겼다면 국가적 망신"이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이번 기회에 근절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버스와 지하철 광고, 블로그 후기 등을 보며 병원을 믿었다는 이씨 역시 "홈페이지 등을 통해 안전한 병원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황당하다.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병원이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전했다. 


소시모와 환연이 설치한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는 지난 9일 활동을 시작했다. 유령의사에게 수술을 받은 피해자들은 공식 홈페이지(http://www.ghostdoctor.org)와 콜센터(☏ 1899-2636)를 통해 피해사실을 신고할 수 있다. 소시모와 환연는 피해사례를 바탕으로 형사고소 및 집단 민사소송을 위한 법적 검토에 들어갈 예정이다. 아울러 미용 성형외과가 밀집한 강남과 서초구 일대에서 '유령수술 근절 및 예방 캠페인'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