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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기사

[취재파일] '유령수술'은 처벌할 수 있을까?

[취재파일] '유령수술'은 처벌할 수 있을까?







SBS 심영구 기자


"하나의 유령이 강남을 떠돌고 있다, 성형수술의 유령이."

(A spectre is haunting Gangnam—the spectre of plastic surgery.)


'유령수술'이 화제다. 성형수술 도중 사망 사고가 최근 1, 2년 사이에 연이어 드러났는데 이중 일부는 '유령수술'에 의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성형외과 의사들도 문제가 심각하다며 나섰다. 보건복지부에서 지난 2월에 '유령수술'(복지부는 대리수술이라고 표현) 대책을 내놨고 시민단체들은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 '유령수술'은 무엇?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 홈페이지에서는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유령수술’은 환자에게 전신마취제를 투여해 의식을 잃게 한 후, 처음 환자를 진찰하고, 수술계획을 세우고, 설명 후 동의까지 받고 직접 수술을 하기로 약속했던 집도의사는 수술에 참여하지 않고, 생면부지의 의사,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기업체 직원들이 전기톱, 망치, 절단기, 칼 등의 수술도구를 이용해 수술하는 것을 말합니다.

 

수술 후에도 환자에게는 마치 처음 약속했던 ‘집도의사’가 수술한 것처럼 속이기 때문에 환자는 ‘유령’에게 수술 받게 된 것과 다름없다고 해서 일명 ‘유령수술’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환자동의 없는 집도의사 바꿔치기 유령수술은 의사면허증, 외부와 차단된 수술실, 전신마취약을 이용한 사상최악의 ‘인륜범죄’이고 의사면허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신종사기’이며, 의료행위를 가장한 ‘살인·상해행위’입니다.


'사상 최악의 인륜범죄'에 '신종사기, 살인, 상해행위'라고까지, 좀 과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탄받아 마땅한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심각한 '유령수술'이라면 유령수술을 행한 자들은, 그러므로 처벌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 처벌이 가능할까.



● 왜 '유령수술'을 할까?


대체로 알려진 내용이나 취재 중 만난 성형외과 의사가 좀더 적나라하게 '유령수술' 실태를 말했다.(이분은 자신을 대신해 다른 의사가 수술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보통 대형병원에서 대표원장님이나 유명한 원장님이 그 사람 이름으로 광고를 하잖아요. 환자는 그분 보고 찾아오고. 그런데 그분은 병원 운영하면서 이제는 그 수술 할 줄 모르게 됐거나 아니면 바쁘거나 하면 다른 의사를 고용해서 수술을 시키는 거죠, 그런 시스템이죠."


"내세운 의사 1명, 2명이 하는 게 아니라 수십 명이 하게 되면 일종의 대량생산을 할 수 있죠. 그러면 가격도 떨어뜨릴 수 있고. 다른 병원과 경쟁이 치열한데... 이게 대형병원의 시스템이었어요. 요즘 한 병원이 계속 문제라고 하는데 그곳만 그러겠어요. 그 병원 전부터 대표원장 걸고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은 있었거든요."


"대리수술하는 것 자체도 불법도 아니고 문제 없고 수술만 잘 한다면 상관이 없죠. 사고가 나서 문제가 된 거잖아요. 대리수술은 일종의 상표라고 보면 돼요. 치과나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선생님이 수술하고 성형외과 선생님이 간판에 걸리는 이유가 그거죠. 성형외과 선생님한테 수술 받고 싶어 하는데, 성형외과 의사는 그 수술을 못하거나 몸값이 비싸거나 바쁘거나 그런 개념이죠. 그분들이 저보다 잘하는 분이었을 수도 있어요. 환자들은 기분 나쁜 일이겠지만."


"수술 스케쥴을 짤 때 성형외과 의사는 빽빽하게 넣어놓고 그 의사가 다 해결 못하니까 그러면 대리(스페어) 의사가 하는 거죠. 그런 분들은 스케쥴이 원래 없고 성형외과 선생님들 스케줄 받아서 하는 거예요.



● 의료법은…처벌할 수 없다

  

국민 의료에 필요한 온갖 사항을 규정해놨다는 의료법에는 이와 관련한 처벌조항이 없다.


의료법 27조 <무면허 의료행위 등 금지>에서는, 의료인이 아니면서 의료행위를 했을 때, 의료인도 면허 외 행위를 했을 때, 환자 유인 및 알선을 했을 때 처벌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대리나 유령수술 부분은 없다.


66조 <자격정지 등>에서는,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 진단서 검안서 진료기록부 등을 거짓 작성하거나 고의로 사실과 다르게 추가기재 수정했을 때, 태아 성 감별 행위, 의료인이 아닌 자에게 의료행위를 하게 한 때 등에 대해 복지부 장관이 1년 이내 면허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이 품위 손상에 대해서는 시행령 32조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규정했다.


1. 학문적으로 인정되지 아니하는 진료행위(조산 업무와 간호 업무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

2. 비도덕적 진료행위

3. 거짓 또는 과대 광고행위

4. 불필요한 검사·투약(投藥)·수술 등 지나친 진료행위를 하거나 부당하게 많은 진료비를 요구하는 행위

5. 전공의(專攻醫)의 선발 등 직무와 관련하여 부당하게 금품을 수수하는 행위

6. 다른 의료기관을 이용하려는 환자를 영리를 목적으로 자신이 종사하거나 개설한 의료기관으로 유인하거나 유인하게 하는 행위

7. 자신이 처방전을 발급하여 준 환자를 영리를 목적으로 특정 약국에 유치하기 위하여 약국개설자나 약국에 종사하는 자와 담합하는 행위


'유령수술'은 심지어 의료인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도 아니다. 처벌 근거가 없는 것이다.


● 시행·적발하면 처벌은 가능….


2월에 복지부가 발표한 대책 중 '유령수술' 부분을 정리하면 이렇다. 수술 전 동의서에 수술예정의사와 실제의사가 동일하다는 내용을 표기하고, 수술실에 CCTV를 자율 설치하며, 수술실 실명제 등을 추진한다는 것.


*수술 전후 설명 강화

수술 전 수술동의서에 ‘수술의사의 전문과목’, ‘수술에 참여한 의사(집도의, 보조의)’, ‘수술예정의사와 실제수술의사가 동일하다는 내용’ 등을 표기하도록 한다.(표준약관인 ‘수술·검사·마취 등 동의서’ 개정)

수술을 받는 환자와 그 보호자에게 사전에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받도록 하며, 수술기록지에 수술 참여의사를 기재하도록 한다.


*대리수술 방지를 위한 CCTV 자율 설치

성형외과 병의원을 중심으로 CCTV를 자율적으로 설치해 나간다.


*의료기관내 의료인 정보제공 확대

의료인의 복장(수술복은 제외)에 의료인에 관한 문구 또는 도구(예 : 명찰 등)를 통하여 나타내도록 하며,

수술실 외부에는 수술을 하는 의료인의 정보(의료인의 면허 종별, 이름, 사진)를 게시하도록 하는 일명 ‘수술실 실명제’를 추진한다.


아직 추진 중인데 복지부 대책대로 되면 '유령수술'을 하다 적발된 의사나 의료기관에 면허자격정지나 업무정지, 혹은 과태료 등을 부과할 수 있게 된다. '유령수술'에 대해 어쨌거나 처벌은 가능해지는 셈이다.


그런데 적발이 문제다. 수술실 내에서 이뤄지는 행위인데다 환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병원 관계자다. 이들이 함께 입을 맞추면 '유령수술'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 이전까지도 그랬고 복지부 대책이 시행된다해도 마찬가지다. 과연 처벌이 가능해졌다고 해서 적발할 수 있을까? 어렵게 적발해(양심고백 등에 의해) 처벌한다고 해도 면허정지나 과태료 처분이라면... 처벌의 실효성은 있나. 즉, 처벌이 가능해지면 '유령수술'을 근절 혹은 방지할 수 있을까.



● '유령수술'은 사기, 혹은 상해 죄


유령수술감시운동본부에 따르면, 1983년 미국 뉴저지 대법원은, 환자 동의를 받지 않은 사람이 환자의 신체를 칼로 절개하여 손을 집어넣는 행위는 ‘의료’가 아니라 ‘사기, 상해, 살인미수’로 기소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고 한다. 환자의 신체를 훼손할 수 있는 모든 권리는, 환자가 수술을 허락한 의사에게만 있고, 환자로부터 위임된 권리는 환자 동의없이 타인에게 양도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수술실에서 환자를 전신마취 한 후에 환자 동의없이 집도의사를 바꿔치기하는 '유령수술'은 그 어떠한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명백한 범죄행위라는 주장이다.


감시운동본부는, 유령수술 피해자에게 피해사실을 접수받아, 해당 병원과 의사를 사기와 상해 죄로 형사고소하고 집단 민사소송을 내는 방안도 준비하고 있다. 증거 확보를 위해 수술실 CCTV 의무화 법안 처리도 촉구하고 있다. 이렇게해서 '유령수술'이 처벌받는 판례가 만들어지면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게 운동본부의 입장이다.